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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자고로 너 즐겁게 해주는 남자가 최고야, 알았지?”
손녀의 결혼식 전날 화려한 색감의 속옷 선물을 쥐여주며 외할머니는 말한다. 미디어나 라디오 사연 속 할머니와는 멀어도 한참 먼 영순(허진). 그는 갑자기 연락이 끊겨 애태우던 남자친구 학수(정인기)의 부고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다. 손녀의 결혼식과 같은 날 열리는 남자친구의 49재. 평생 못 느낀 즐거움을 선물했던 학수에게 달려가고 싶은 영순은 어떤 결정을 할까?
올해 칸국제영화제 학생 작품 경쟁 부문 ‘라 시네프’에서 한국 감독으로 처음 1등 상을 받은 허가영 감독의 ‘첫여름’이다. 31분짜리 단편인 이 작품은 지난 6일 사업자아파트담보대출 극장에서 개봉(관람료 3천원)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올해로 29살인 허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작품으로 왜 인생의 뜨거운 여름이 차갑게 식어버린 노년을 그린 걸까?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허 감독은 “청소년 시절에 잠시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떠올리지 못했을 이야기”라고 말했다.
경희대 기숙사
허가영 감독이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영화에 대한 생각과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집안 사정으로 몇달간 외할머니와 둘이 사는데, 꼭 월세 나누려고 만 개인회생전문상담 난 룸메이트 같았어요.(웃음) 매일 얼굴에 팩을 하는 멋쟁이셨는데, 제가 학교를 제대로 다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아무 관심이 없으셨어요. 속으로 ‘무슨 저런 이상한 여자가 있지?’ 생각했죠.”
한참 뒤 대학에 들어간 허 감독은 전공인 경영학과는 상관없는 시·소설 쓰기,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과목을 듣고, 빈민·노동운동 등에 관심 갖고 backed 바쁘게 살면서 할머니는 까마득히 잊었다. 그러다 노인복지론 수업 과제로 인터뷰를 하려고 오랜만에 할머니를 찾아갔다가 뒤통수를 맞는 듯한 강렬한 경험을 했다.
“어떻게 지내셨냐는 의례적인 질문을 했는데, 연락이 안 되는 남자친구 걱정으로 잠을 통 못자서 수면제를 먹는다고 하시는 거예요.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우량저축은행명단 그때 6시간 동안 들었던 할머니의 고된 삶은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지워버리는 전형적인 한국 여성의 것이기도 했다. 남편에게 평생 물건 취급을 받고, 늙어서도 명령하는 남편의 똥 묻은 속옷을 빨며 살아야 하는 영화 속 영순처럼 말이다.
영화 ‘첫여름’. 메가박스 제공
영화에선 젊은 시절 화려한 외모를 자랑했지만 이제는 주름 가득한 배우 허진의 연기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허 감독은 “캐스팅의 승리”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시나리오에는 빈칸이 많았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제가 느낄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허진 선생님과 한줄 한줄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말투나 단어를 고치는 작업을 했어요. 어떤 대사는 제가 꼭 해야 한다고 우긴 반면, 선생님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갈등도 있었죠.”
그는 사전제작 기간뿐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도 허진에게서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순과 배우 허진의 경계를 허무는 데 연출의 공을 들였다고 했다. “닷새간 5회차 촬영을 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만큼 허진 선생님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첫여름’을 만들면서 연출자로서 많은 단계를 압축적으로 통과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성숙하고 노련한 배우들 덕분이에요.”
수많은 제작사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요즘, 그는 장편 데뷔작으로 중년 여성과 젊은 여성이 각각 주인공인 두개의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중이라고 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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