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창 발왕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


2025년 10월 15일 수요일. 졸업한 지 반세기가 넘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이른 아침 서울을 출발했다.
가을길을 버스가 달려 평창에 닿으니 안개와 가랑비가 어깨를 적셨다. 오전 11시경, 발왕산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해 매표를 마치고 흔들림 없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유리창 밖으로 번지는 안개와 단풍빛의 잔영, 그 사이로 케이블카가 구름을 헤치며 오르는 길은 마치 세속의 번잡함을 벗어나 천년의 숲으로 향하는 여정 같았다.
골드몽게임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발왕산 무장애 나눔길’이라는 표지판이 우리를 맞았다. 노약자, 임산부, 아이들도 함께 걸을 수 있는 700m의 덱길. 그 길 끝에는 발왕산의 상징, 천년 주목 숲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시야는 흐렸지만, 그 흐림 속에서 오히려 나무들이 더 짙은 생명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숲길 입구에는 검게 그을린 사아다쿨 듯한 통나무 표석 하나가 서 있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
단 한 줄의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 문장은 세상의 모든 강인함과 순리를 담고 있었다.
주목은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이 흙 한 줌 없이도 뿌리를 내리고, 천년을 살고 죽어서도 천년을 버틴다.
카카오야마토‘왕발주목’ ‘참선주목’ ‘일주목’ ‘8자주목’ ‘삼두근주목’-숲길을 오르며 만난 이름마다 주목의 생존과 철학이 새겨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참선주목’이었다. “천년을 살았는데 속이 텅 빈 나무.” 속을 비워야 오래 산다는 말, 그 구절은 인생의 결론 같았다. 많이 채운다고 견고해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오래 버틴다는 이치를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숲이 먼저 알고 있었다.
‘왕발주목’은 바위에 떨어진 씨앗이 스스로 길을 찾아 뿌리를 내린 나무였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강인한 기운.” 이 문구를 읽으며 나의 지난 세월이 스쳐 갔다. 은행의 좁은 책상 앞에서, 때로는 실패와 오해 속에서도 신뢰를 지키기 위해 애써왔던 시간들. 그 길이 어쩌면 바위 위에 뿌리내린 한 그루의 주목 같 골드몽게임 았다. 흙이 없어도, 물이 부족해도, 그저 살아내기 위해 뿌리를 깊이 내렸던 날들.
이어 만난 ‘삼두근주목’은 건강한 몸과 정신의 상징이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 간단한 진리를 세월이 지나서야 몸으로 느낀다. 육체가 지치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지치면 삶이 무너진다. 몸과 정신, 그 두 가지 근육이 조화롭게 움직여야 진정한 건강이라 했다.
그리고 ‘8자주목’ 앞에서 멈춰 섰다. 줄기가 스스로 ‘8’의 형태를 이룬 나무였다. “행운의 수, 8을 스스로 가진 나무.” 8은 무한대를 닮았다. 7일의 주기를 넘어서 새롭게 시작하는 수, 새로운 출발의 상징이다. 70년의 인생을 넘긴 지금, 나 또한 다시 한 번 8번째 날의 인생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의 시간은 회한이 아니라 경험의 뿌리로 남고, 남은 날들은 다시 새로이 자라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참선주목’ 앞에서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추었다. 비에 젖은 나무껍질은 붉은빛을 띠며 마치 피처럼 생생했다. “속을 비워야 장수한다. 과한 욕심을 버리고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라.” 이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온 세월 동안 채우려 했던 것들-명예, 돈, 관계, 일-그 모든 것이 사실은 무게였다는 것을 이곳에서 깨닫는다. 비워야 비로소 가벼워지고, 가벼워져야 오래간다. 주목은 속이 비었지만 그 비움이 그를 천년의 생명으로 만든다. 사람도, 인생도, 결국 그와 다르지 않다.
덱길 끝, 1458m 발왕산 정상에 섰다. 비바람에 시야는 온통 희뿌옇고, 멀리 평창의 능선들은 안개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오히려 맑았다. ‘나는 오늘, 천년의 시간 속을 걸었다.’ 비에 젖은 옷과 신발이 불편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팔을 번쩍 들어 올려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젖은 하늘 아래에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남은 인생은, 비움과 강인함으로 살자.”
김창순(미래에셋증권 M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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